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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31일

여름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사근거리는 귀뚜라미의 울음소리,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는 서늘한 바람, 느닷없이 내리는 시원한 비 같은 것들이 말해주고 있었다. 이제 가을이라고. 드디어.

정신없는 여름이었다. 그 누구보다 바쁘게 이곳 저곳을 쏘다녔다. 조증탓이었다. 선생님께서는 '착한 조증'이라고 말씀하셨다. 자신을 축내는 일만 자제했으면 좋겠다면서. 근데 그게 어렵잖아요. 제가 정신병자인 이유가 그 때문이잖아요.

약이 줄었다. 항우울제가 필요없을 정도의 조증이라셨다. 필요시 약과 취침 전 약만이 남았다. 터질듯한 약봉투를 가방에 우겨넣으며 병원을 나서던 때가 엊그제같은데, 나아지고 있구나. 그게 어느 방향이 되었든. 어떤 이유에서든.

그런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괜찮다고 여기며 내 자신을 위로했던 지난날의 성추행이 자꾸만 내 발목을 잡았다. 선생님께서도 내 증세의 원인이 그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괜찮다고 생각만 했을 뿐 아니었던거지. 자기 그 날 이후부터 그랬잖아. 안괜찮았던거야. 안괜찮았어.

매일같이 타는 지하철에서 누적되는 피로감이 배로 뛰었다. 성인 남성의 존재 그 자체만으로 숨이 가빠져온다. 참다참다 자리를 피할 때 마저 상대의 눈치를 본다. 기분 나빠하면 어떡하지? 걱정한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내가 먼저인데, 그게 안된다. 자꾸만 무섭고 겁이난다. 필요시 약을 들이킨다.

나는 오늘도 지하철을 탔다. 누군가가 내 옆에 서질 않길 간절히 기도하며. 어쩌다 스친 어깨에 화들짝 놀라 벌어진 입을 막으며. 결국은 또 문에 등을 붙여 돌아선다. 그래, 상관없지 않아. 나는 이렇게 힘들다고.

일기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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