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하게 정수기를 찾아 복도로 나섰다. 알약과 함께 물을 들이켰다. 넘어가는 물에 목구멍이 차가웠다. 불쾌하게 두근거리는 심장 때문에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다. 나는 시험을 견디지 못하는 인간임에 틀림없다. 공부를 해도 포기를 해도, 오늘치 약을 다 털어 먹어도 떨리는 손은 그대로였다. 아무렇지 않은척 자리에 앉아 필기를 계속했다. 손에서 축축하게 묻어나오...
환청이 들렸다. 처음있는 일은 아니었다. 이따금씩 상상속 인물이 또렷한 목소리로 말을 걸어오곤 했으니까. 그러나 이번은 달랐다. 현실이 아니란걸 알면서도 두려웠다. 가위에 눌린것마냥 숨이 막혔다. 자꾸만 들리는 소리에 귀를 막고 고개를 흔들었다. 동생을 깨워 손을 잡아달라 부탁했다. 지독하게 구체적이고 괴로운 환청이었다. 누군가가 과거의 기억을 강제로 끄집...
정신 차릴 새 없는 주말이었다. 보강에 약속, 팀플까지 일정이 빠듯했다. 바쁜건 다들 마찬가지였는지 출석한 인원이 몇 되지 않았다. 교수님께서 수업에 참여해주어 고맙다고 말씀하실 정도였다. 약속 전 시간을 떼울 핑계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교수님의 말씀에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다른 학생들도 같은 마음이었는지 평소와 확연히 다른 분위기 속에서 수업이 진...
"이제 좀 행복해봐도 되지 않겠어요?" 행복감이라는 감정이 너무 생소해서 현실과의 괴리감까지 느껴진다는 내 말에 웃으며 답해주셨다. 무거운 짐을 오랫동안 짊어지고 있다가 갑자기 내려놓았을때에 느껴지는 홀가분함 같은거라면서. 평소보다 많은 말이 오갔다. 왜인지 자꾸만 할 말이 떠올랐다. 죽고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으면 좋겠다던 말을 했던게 생각나냐고 물으셨다...
행복하고 긴 하루였다. 과제를 위해 두시간 더 일찍 맞춰뒀던 알람을 껐다. 다시 빠져든 꿈에는 시완이가 나왔다. 꿈속에서마저 따뜻하고 똑부러지는 사람이었다. 꿈이 깔끔하게 마무리되며 잠에서 깨자 문득 시완이가 보고싶어졌다. 지하철에 서서 레포트를 작성했다. 자리가 나서 앉은 뒤에도 그랬다. 꽤 여유있게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도착하고보니 고작 5분 더 일렀을 ...
드디어 뮤지컬 관람일이다. 한달 전 쯤 예매해둔 공연이었다. 돈이 없고 정신은 더 없던 그 때. 월급날과 딱 맞아 떨어진 결제일 덕분에 어쩌다 성사된 약속이었는데, 이제보니 정말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마지막 수업에 출석만 해둔 뒤 짐을 챙겨 자리를 나섰다. 사람을 만나러 가는 길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내가 놀라웠다. 어떻게든 피하려고 애를쓰곤 했었는데...
창문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하늘이 쾌청했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밖으로 나가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모자만 눌러쓴채 급하게 문을 열었다. 예상대로 남 부럽지 않은 날씨였다. 날이 화창하고 바람은 선선했다. 찰랑이는 머리칼에 맞춰 몸을 살짝씩 흔들어댔다. 기분이 너무 좋았다. 얼마전 랜덤으로 설정해둔 음악 어플에서 나오는 노래까지 완벽했다. 컬러링을 바꿨다....
축제 홍보 전단의 '비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염원이 무색하게 종일 비가 내렸다. 이런 날이면 곧잘 약속을 깨곤했는데 이번에는 달랐다. 요즘은 스스로에게 놀라는 일이 잦다. 모임에 참석한 일도 그랬다. 술을 진탕 마셨다. 사람들 속에 섞였다. 뭐가 그렇게 웃겼는지 광대가 아플 때까지 웃어댔다. 지키지도 않을 약속들을 잔뜩 잡았다. 매사에 진심일 필요는 ...
엊그제는 병원에 가지 않았다. 늦게 일어난 탓이었다. 그리 크게 늦은것도 아니었는데 또 병이 도졌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것처럼 무기력했다. 사실 이번주 내내 이랬다. 수요일에 학교를 빠진게 화근이었다. 나는 매번 이런다. 하기싫어 피했으면 즐겁기라도 해야하는데 그러질 못한다. 내가 그렇다는걸 알면서도 맞닥뜨리면 피하게되고, 그러면 또 힘들어지고. 피하지 ...
심장이 빠르게 뛰어대는걸 견딜 수가 없다. 귀까지 왕왕거리는 기분 나쁜 두근거림. 공황이 올 때마다 이런다. 약을 먹어도 이런데 그간은 도대체 어떻게 견뎌왔는지 모르겠다. 차라리 죽어버렸으면 하는 마음에 숨을 참는다. 딱히 별 일이 있는 건 아니었다. 별 일이 없는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는 죄책감이 나를 짓눌렀다. 이 불쾌한 가라앉...
드릴 소리에 눈을 떴다. 공사가 한창이었다. 월 초에 시작했던걸로 기억하는데, 오늘까지 여전한걸보니 집을 통째로 바꿀 모양이었다. 밖은 분주했지만 나에게는 더없이 한가로운 오후였다. 남은 시험 과목 공부도 간단했다. 할 일 없이 침대에 누워있다가 문득 햇빛이 그리워져 거실로 나갔다. 햇빛이 잔뜩 쏟아지고 있었다. 볕이 잘 드는 곳에 드러누워 밖을 바라봤다....
할 일을 미룬 날이면 가위에 눌린다. 딱히 그렇지 않은 날에도 가위에 눌린다. 꿈 속의 내가 아, 또야. 라고 말하며 체념할 만큼이나 자주. 입시 스트레스에 시달리던 때는 단 하루도 가위 눌림 없이 넘어가는 날이 없었다. 그 공포에 편히 눕지 못한채 책상에 엎드려 눈을 감는 그 잠깐 사이에도 그랬다. 앉아서도 가위에 눌렸다. 엎드려도, 누워서도, 서서도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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